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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앞에 장애는 없다…무대를 가르는 힘찬 몸짓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9.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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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805
내용

예술 앞에 장애는 없다…무대를 가르는 힘찬 몸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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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희 장애인표현예술연대 대표
김형희 한국장애인표현예술연대 대표. 25일 ‘비상2’ 리허설이 끝난 서울 SAC아트홀에서 만났다. 뒤의 영상은 그의 작품을 확대해 만든 것이다. [오종택 기자]

김형희 한국장애인표현예술연대 대표. 25일 ‘비상2’ 리허설이 끝난 서울 SAC아트홀에서 만났다. 뒤의 영상은 그의 작품을 확대해 만든 것이다. [오종택 기자]

꿈, 사랑, 도전. 
  

대학생 때 교통사고로 전신마비
접었던 무용수 꿈 그림에 담아내
장애예술인 모델로 뮤지컬도 제작

미술치료 자격증 따고 제2 인생
몸 불편한 이웃들의 재기 도와
“내 삶 바꾼 예술 더 널리 알릴 것”

김형희(48) 한국장애인표현예술연대 대표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꼽는 가치다. 스물두 살, 눈부신 나이에 교통사고로 전신마비 장애인이 된 그가 다시 꿈을 찾고 사랑을 만나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게 되기까지 예술의 힘이 컸다. 그는 “예술을 통해 내면과 화해했고, 사회와 소통했고, 다시 세상으로 나올 수 있었다”고 했다. 2007년 한국장애인표현예술연대를 만들어 ‘장애여성 화가 만들기 교육 프로그램’ ‘야외 미술치료 체험’ 등의 활동을 펼치고 있는 그를 지난 25일 서울 삼성동 SAC 아트홀에서 만났다. 그가 기획·제작한 창작뮤지컬 ‘비상2’의 최종 리허설 직후였다. 그를 포함한 장애예술인 세 명의 실화를 담은 ‘비상2’는 25, 26일 세 차례 무대에 올라 객석을 가득 채운 900여 관객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교통사고로 부서진 무용가의 꿈=그는 어려서부터 춤에 소질이 있었다. 일찌감치 무용으로 진로를 정했고, 계원예고를 거쳐 성균관대 무용학과에 진학했다. “원 없이 춤을 추며 몸짓의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어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틈틈이 아르바이트 삼아 패션 모델로 활동하는 즐거움도 누렸다. 
  
삶의 전환점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대학 졸업반이었던 1992년, 초보운전자인 친구의 차를 얻어탄 날 사고를 당했다. 운전면허를 딴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던 친구가 브레이크 대신 액셀을 밟아 중앙분리대를 들이박은 것이다. 동승했던 두 친구는 부서진 차 속에서 걸어서 나왔지만, 그는 목뼈가 으스러졌고 전신마비 진단을 받았다. 그는 “처음엔 죽음에 대한 생각도 많이 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 도움 없이는 물 한 모금도 마실 수 없으니 죽을 수도 없었다”고 말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를 붙든 건 부모님의 헌신적인 사랑이었다. 24시간 그의 손발이 돼주는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재활운동을 시작했다. 손도 팔도 쓰지 못했던 그가 숟가락 보조기를 이용해 혼자 밥을 먹을 수 있게 됐고, 침대에서 휠체어로 스스로 옮겨 앉을 수 있게 됐다. 1994년 팔의 힘을 기르기 위해 붓을 손목에 붕대로 묶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며 만난 미술이 그에게 제2의 인생을 열어줬다. 
  
◆캔버스에 펼쳐진 새 희망=그가 주로 그린 그림은 무용수다. 무용 잡지 속의 무용수들이 모델이 됐다. 그는 자신의 작업을 “캔버스 위에서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안무하며 또 다른 춤을 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림에 빠져들면서 점차 우울한 기분은 줄어들었고 팔의 힘은 늘어갔다. 
  
그림을 통해 그는 운명적인 사랑도 만났다. 1998년 대한민국장애인미술대전에 작품을 출품, 입상을 했다. 입상자 대상의 제주도 스케치 여행에 자원봉사자로 참가해 그를 도왔던 여섯 살 연하 대학생이 바로 현재 그의 남편이다. 군대에 가서도 매일 두 차례씩 전화를 하고 100통 넘게 연애편지를 보낸 남편의 진심 앞에서 장애는 걸림돌이 아니었다. 5년여의 연애 끝에 2003년 두 사람은 결혼을 했고, 2006년 딸을 낳았다. 
  
의료진도 걱정했던 임신·출산을 무사히 마친 그에게 우울증이란 복병이 찾아왔다. ‘전신마비 엄마가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란 걱정이 그의 마음을 짖눌렀던 것이다. 이 때도 그에게 돌파구가 돼준 건 그림이었다. 출산 6개월 후부터 시작한 임상미술치료사 자격증 공부가 그를 다시 회복시켰다. 그는 “그림을 그리는 과정이 내게 심리적·정신적·육체적 재활 치유였다는 것을 이론 공부를 하며 깨닫게 됐다. 미술을 통해 다른 사람의 상처난 마음을 위로하고 희망과 기쁨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임상미술치료사 1·2급, 색채치료전문가 자격증을 딴 그는 차의과학대 대학원에 진학했고, ‘임상미술치료가 척수손상 환자의 우울감 감소와 재활 동기 향상이 미치는 영향’이란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뮤지컬 ‘비상2’. 김형희 대표가 무대에 올라와 그림 시연을 하는 장면이다. [사진 한국장애인표현예술연대]

뮤지컬 ‘비상2’. 김형희 대표가 무대에 올라와 그림 시연을 하는 장면이다. [사진 한국장애인표현예술연대]

◆“예술을 통해 사회와 소통하길”=그의 삶을 변화시킨 예술의 힘을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하기 위해 그는 2007년 비영리민간단체 한국장애인표현예술연대를 설립했다. 가장 처음 펼친 사업은 ‘장애 여성 화가 만들기’다 . 10개월 과정의 미술 교육을 거쳐 서울 인사동에서 전시회를 여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2002년 첫 개인전을 열었던 김 대표가 “전시회를 하며 자신감이 생겼고 또 다른 꿈을 꿀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만든 프로그램이다. 2015년까지 15명의 ‘화가’를 배출했다. 이 밖에 장애인 웨딩 패션쇼, 장애인·비장애인이 함께 하는 ‘표현예술아카데미’, 예술 힐링 캠프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2014년부터는 공연 제작에도 나섰다. 사업비는 정부의 장애인 문화예술 지원 사업 공모에 참여, 국고보조금을 받는 방식으로 충당한다. 
  
김 대표는 “연간 100억원 정도인 사업비 중 공모사업 예산은 30% 남짓에 불과하다. 70억원 정도가 지정사업 예산인데, 사단·재단법인에 집중 지원되고 있다. 비영리·풀뿌리 단체, 개인 예술가들은 지원받기도 힘들고 지원금도 소액에 그친다”면서 “지정사업을 모두 공모사업으로 바꾸고 투명한 지원 체계, 평가 체계를 확립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5, 26일 공연한 ‘비상2’는 지난해 11월 서울 청계천로 CKL스테이지에서 초연한 뮤지컬이다. 오디션을 통해 선발한 20여 명 장애인·비장애인 배우들이 함께 출연했다. 작품의 실제 주인공인 김 대표와 시각장애 시인 손병걸(51)씨, 소아마비 바이올리니스트 이강일(62)씨 등도 특별 출연 격으로 무대에 올랐다. 이제 김 대표에게 장애는 “예술 속의 오브제”다. “장애를 창작의 원천으로 삼아 예술적으로 평가받고 싶다”며 “장애예술인들이 예술을 통해 사회와 소통하고 행복하게 살아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예술 앞에 장애는 없다…무대를 가르는 힘찬 몸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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